김홍준 (19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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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홍준은 일제강점기 만주국군 장교로, 간도특설대에서 항일 무장 세력 토벌에 가담하여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된 인물이다. 1936년 만주국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군 소위로 임관하여 보병 제30단에서 근무했으며, 1939년부터 간도특설대에서 활동했다. 1941년 중위로 진급하고, 1943년 팔로군 토벌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 광복 후에는 남조선 국방경비대에서 복무했으나 1946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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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준 (1915년) - [인물]에 관한 문서 | |
|---|---|
| 기본 정보 | |
| 이름 | 김홍준 |
| 출생 | 1915년 7월 18일 |
| 사망 | 1946년 9월 16일 (31세) |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상주시 |
| 사망지 | 불명 |
| 소속 | 만주국군 남조선국방경비대 |
| 군 경력 | 불명 |
| 최종 계급 | 대위 (만주국군) 소좌 (국방경비대) |
| 제대 후 | 불명 |
| 묘소 | 불명 |
| 서명 | 불명 |
| 군 복무 정보 | |
| 복무 기간 | 1937년 ~ 1945년 |
| 최종 계급 (만주국군) | 중위 |
| 부대 | 불명 |
| 지휘 | 간도특설대 |
| 주요 참전 전투/전쟁 | 불명 |
| 서훈 내역 | 불명 |
| 기타 이력 | 불명 |
2. 만주국군 복무
1936년 4월 만주국 중앙육군훈련처(봉천군관학교) 제5기로 입학하여 제1구대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1937년 9월 졸업했다. 1937년 11월 27일 소위로 임관되어 보병 제30단에서 근무했다. 1939년 일제가 항일 무장 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창설한 특수 부대인 간도특설대의 주요 간부로 복무했으며, 1941년 3월 3일 만주국군 중위로 진급했다.[1]
해방 이후 김홍준은 남조선국방경비대 총사령부에서 근무했지만, 1946년 9월 26일 교통사고로 3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1] 1946년 1월 15일 군사 영어 학교를 졸업하고 남조선국방경비대 중위(군번 10008번)로 임관하여 제4연대 편성에 참여하여 창설 중대장을 맡았다. 같은 해 5월, 대대장 겸 A 중대장으로 재직 중, 소대장 조암 소위에 의한 중대장 배척 사건이 발생하자 총사령부 보급과장으로 전출되었다. 대한민국 국방경비대총사령부 근무 경력을 인정받아 국립묘지 안장 자격을 얻었다.
김홍준은 일제 강점기에 여러 친일 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자료나 증거가 제시되지 않아 그의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남아있다.
1943년 9월 15일 러허 성(열하성)에서 팔로군 토벌 임무를 수행한 공로로 만주국 정부로부터 훈5위 경운장(景雲章)을 받았다. 1944년 3월 전후 간도특설대 기박련장(중대장)으로 복무하며 러허 성(열하성) 유수림자(楡樹林子) 일대에서 진행된 항일 무장 부대 토벌 활동에 참가했다.[1]
3. 해방 이후
만주국이 세운 간도특설대에서 항일무장세력을 소탕하는 데 가담해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자 명단의 군 부문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포함되었다.[1]
4. 친일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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